이 책은 2019년 트레바리 모임을 하면서 읽었던 책이었다. 트레바리 모임 자체가 다양한 사람을 새롭게 만나면서 어색함이 풀리고 서로 좋은 자극들을 받을 수 있는 모임이었는데, 거기에서 이런 책을 만나게 되어 더욱 뜻깊게 느껴졌다.
온라인에서 지금은 절판 상태로 뜨던데 오프라인은 혹시 모르겠다.
동명으로 영화로도 나와있다. 국내 개봉은 하지 않았더라.
읽는 내내 진도가 나가기 어려워서 힘들었지만(트레바리 팀원들도 모두 힘들었다고 하더라)
읽고 나니 좋은 소설들이 그렇듯 마지막에 촤하하- 하는 카타르시스와 희열이 느껴져서 뜻깊은 소설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사회적 통념, 계급이나 계층적 구조에 따라 편견을 갖게 되고 거기에 인상이 정해지는 등 영향을 받게 된다.
편견이라는 것은 어쩌면 상호 인식하고 살며 갖는 본능적인 위험 회피 도구일 것이다. 이런 놈은 꼭 이렇더라, 그러니까 내가 조심해야지.. 이런 사람은 나랑 잘 맞더라, 좋아, 친해져야지..
이 소설은 심리학, 철학, 사회학적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의 교양과 지식이 마구마구 쏟아져 나오는데, 천천히 읽어놓으면 작중 인물들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타인에 대해 스스로를 당당하게 여기지 못하고 동굴속과 같이 묘사된 수위실에서 할 수 있는한 최대한 숨죽이며 사는 주인공. 직업은 수위인 르네 아줌마
자신이 ‘교양있는 수위’라는 통념상 받아들여지지 않을 편견에 그녀는 그다지 저항하거나 도전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을 숨기려고 애쓴다.
겉은 따가운 가시지만, 알고 나서 가시 안을 보면 연약한 몸과 귀여움을 갖고 있는 고슴도치처럼 말이다.
책을 보면 아줌마의 현실 인식과 교양은 꽤 레벨이 높고 정확하다. 또 세밀하고 다채롭다.
그러나 현실에 대한 행동은 수동적이고 소극적이다.
일단 남에 대해 비판적으로 보고 업신여기기도 한다.
일일이 내뱉지는 않으나 타인에 대해 개인적으로는 매우 세밀한 평가를 한다.
그러면서 타인에 대한 진정한 모습을 보려하기보다는 살아오면서 동굴처럼 깊숙하게 스스로 만든 편견의 늪에 갇혀서 살아왔다.
편견을 깨부술 만큼 진솔하게 연결될 수 있는 포인트가 채널이 없었기에 르네는 진정 인간에 대해 이해하지 못했다.
르네 또한 자신의 존재가 타인에게는 매우 비밀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르네가 행복하지 않은 것은 절대 아니다, 삶의 태도가 그러했을 뿐)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면서 르네에게도 사건이 생긴다.
윗층에 새로 이사온 일본인 카쿠로 오주는 이런 르네의 인생의 전환점이자 이전에는 없던 새로운 세계의 접점이 된다.
르네는 오주씨를 통해서 자신을 제대로 인식하게 되고 오주는 르네를 편견없이 진정으로 이해해주고 관심을 가져주고 보듬어준다. 르네의 사상이 '겨울이 지나 봄날의 동백꽃 꽃봉우리가 피어나듯' 크게 변화된다.
이 드라마틱한 변화의 과정과 몇 장면들이 이 소설의 백미이며 매우 감동적이다.
이 과정들이 매우 흥미롭고 따뜻해서 주변사람들에게도 읽기 힘듦에도 꼭 소설을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오주는 일본인이고, 또다른 등장인물이자 어린 천재 소녀 팔로마가 동경하는 것이 일본의 대중문화다.
르네 역시 일본문화의 예술성과 그 수준에 대해서 극찬해 마지않는다.
자신이 알고 있던 바둑, 하이쿠(시), 만화애니메이션 등의 소재를 갖고 깊은 대화를 나누고 같이 공감한다.
이 부분에서 르네 아줌마의 사고의 변화 과정이 그려지는데, 나는 이 소설 속에서 일본이라는 곳이 일종의 미지의 공간, ‘신세계’로서 매개적 역할을 한다고 봤다.
몇십년 간 이사가 없던 건물 4층으로 갑자기 이사와서 기존 장식들을 모두 자신의 방식대로 뜯어고치고
자신 만의 존재감을 드러내면서 먼저 타인에게 편견없이 다가가서 따뜻하게 배려하는 오주 역시 그 신세계에서 온 새 사람이다.
실제 동굴 같은 수위실에 살면서 동굴같은 폐쇄된 삶을 살며, 예술, 문학에 대한 감상과 타인에 대한 매우 구체적인 평가와 카테고라이징(편가르기)와 추정을 통해 삶의 위안을 느끼는 르네를 보며,
초반에는 안타까움이 들면서 그래 나에게도 그런 모습이 있었지, 하며 한편으로 동질감을 느꼈다.
이야기가 뒤로갈수록 르네는 오주와 어린 팔로마를 만나면서 조금씩 세상을 밝게 받아들이고 변화한다. 독자는 이 과정을 보면서 기쁘고 짜릿하고 부러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나를 제대로 봐주고 속깊이 잘 맞고, 새로운 세계로 이끌어 주는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어쩌면 죽기 전까지 불가능 할 수도 있겠다는 절망감을 갖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르네 아줌마는 혼자서 읽어온 전세계의 고전과 문학 작품과 예술작품을 통해서,
그리고 현실의 인물들과 사건을 통해서도 단단한 바위처럼 결코 변화해내지 못했던 동굴속 인생의 역사였다.
낯선 곳에서 낯선이가 다가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봐주고 보듬어주면서 ‘부정’의 에너지가 ‘긍정’으로 바뀌는 예술이 되었다.
이런 과정도 인간의 사랑의 방식 중 일부라고 본다. 사람을 진정으로 변화시키고 이끌어낸다는 결과적 의미에서다.
내 인생에서 내가 먼저 누군가에게 오주 아저씨가 되어야겠다는 활력 넘치는 생각을 해본다. (그러면서도 가능할까,라는 의문이 든다)
그렇게 이뤄진 관계란, 자고로 주고 받으면서 어마어마한 시너지를 내고 그 과정 자체가 인간 세상의 예술이고 위대한 의미일 테니까 말이다.
이 세상에 어떠한 커다란 벽이나 차이, 편견의 울타리가 있더라도
(말은 쉽지만 정말 힘들다)
상대를 편견없이 보다듬어주고 이해하려 애쓰고 관심갖는 개개인의 열정은
분명 더 나은 사회를 만든다고 소설을 통해 작가는 말한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냉소적인 고슴도치들이다. 그러나 고슴도치의 가시를 부드럽게 만드는 것은 다름아닌 부드러운 상대방의 손길이다.
스스로 가면 속에서 안주하거나 타인에 대해 먼저 단정짓고 결정해버리려 하지 말아야겠다.
겉으로 보이는 그 단단한 가시 안에는 모두 따뜻하고 나약하고 소심하지만
누구나 다채롭게 가치있는 존재들이라는 것을 잊지 말고
더욱 연대하고 나누며 사랑하며 살아가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만드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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