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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책

나는 독일인입니다 - 노라 크루크

by 영군짱 2021. 4. 23.


부끄러운 일이지만, 독일의 홀로코스트 이야기는 여러번 들어왔지만 뼛속 깊이 공감이 가지 않았다. 

이 책을 읽게 된 후, 구체적인 사연들과 사물에 대한 묘사, 그림, 사진과 같이 이야기를 듣다보니 깊이 공감되고 이해되었다. 


나는 독일인입니다.

저자 노라 크루크는 독일인이다. 독일인은 한 시대의 씻을 수 없는 역사를 맹목적인 인간의 추악한 면을 보여주고 독일인의 수치라 여긴다. 



여전히 현대에 와서도 반성에 반성, 꼬리를 무는 질문과 후대에 교육적인 메시지를 던지고자 하는 독일인들의 집념이 보였다. 

이 책의 백미는 이유없이 히틀러와 그 일당들에게 세뇌교육을 받고, 유대인을 없애자는 구호를 외치며 죄책감 없이 일생을 보내며 악마같은 짓을 저질렀던 그 세대의 과오를 한페이지 한페이지 다채로운 사진과, 편지글, 그림을 통해 보여준다는데 있다. 


이 성의 넘치는 장치들은 독자로 하여금 그 시대의 다각적 상황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게 만드는 요소다.

처음이야, 형과 이렇게 가까이 있어본 게

 

이탈리아에 가족과 여행을 하러 간줄 알았더니 아버지가 형의 시신이 누워있는 무덤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이런 표현들은 단지 상관도 없는 남의 독일 병사가 아닌, 아버지의 동생이자 자신의 삼촌의 이야기로 들려주는데 굉장히 생생하게 느껴진다. 


전쟁터에서 잃어버린 형을 무덤에서나마 가장 가까이 있어봤다는 아버지의 말에서 ‘현대사’의 압도적인 에너지가 느껴져서 정신이 번쩍 든다. 


단지 독일군과 연합군이 여러해에 걸쳐 전쟁을 했다,가 아니라 

나의 형과 누군가의 동생이 서로 총을 겨누고 죽고 죽임을 당했다는 것. 내 주변의 이야기로 치환하는 것에서 역사의 의미가 와닿기 시작한다. 

 

아, 빌리 할아버지..



저자가 오랜 기간 연락이 끊긴 고모와 소통하기 위해 직접 고모의 아들에게 접촉해 퀼스하임으로 직접 찾아가고, 이모에게 부탁해서 기억의 서랍을 열게 되는데 그 과정이 매우 집요하다.



그 시절의 기억을 끌어내는 방식은 수많은 편지들과 실제 사진들이다. 중대부역자, 부역자, 경미부역자, 동조자, 무혐의자 중에서 스스로 동조자로 분류하는 빌리 할아버지의 모습은 특히 감명깊다. 



홀로코스트의 중대부역자는 아니었지만 스스로를 유약했다고 반성하며 직접 고민 끝에 미트로이퍼(용기와 도덕적 태도가 부족한 사람)라는 단어를 썼을 심정이 떠올라 먹먹해졌다. 


빌리 할아버지의 억훌한 사정

빌리 할아버지의 사정은 이렇다. 실제 나치당에 들어가지 않았던 사람이다. 그러나, 나치 친위대 소속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알고보니 사연은 이렇더라. 이 사연을 찾아내는 과정이 마치 추리소설처럼 흥미진진했다. 여러 번의 가설과 증거를 통한 추론을 통해 그 일의 진실을 찾아낸다. 



수천 명의 유대인들을 강제추방하고 교살을 명령한 전 제국장관 로베르트 바그너의 차가 빌리 할아버지가 인수한 회사 주차장의 한 차고에 있었다는 이유로 빌리 할아버지는 나치당에 입당을 압박 받아 입당한 것이었고, 그 대가는 혹독했다. 



할아버지는 이 꼬리표를 떼기 위해 훗날 오랜 재판 청구를 하는 등 노력하고 결국 최종 평결을 받는다. 국가적으로는 부역자 라는 꼬리표를 잠시 달았지만, 그의 노력은 일관되게 가족의 경제적 부양을 위한 생계와 정치적 양심 두가지를 위해 행동하고 노력했다.



나비효과처럼 생계 유지도 힘든 한낱 개인에게 정치와 전쟁의 역학관계가 불러오는 파장을 보여준다. 전쟁은 총과 칼로 서로를 해치는 것 외에도 이런 비극이 발생시킨다.

단순한 인식은 무지함의 증표이기도 한 것


어떤 일이든 단순화되기도 하고, 꽁꽁 싸매진 실타래를 풀듯이 한없기도 하다. 이 책을 읽기 전의 나의 인식은 

‘누군가 전쟁에서 죽었다.’

였다. 


이 책을 읽으며 마치 내가 전후 독일과 이탈리아를 넘나들며 독일의 나치가 세계를 휩쓸었던 시절로 취재를 다녀온 것처럼 생생하게 느껴졌다. 전쟁과 나치즘은 여전히 현재에도 아픔과 상처를 남겨 놓았음을 확인했다.


저자 노라 크루크는 자신의 가족사를 캐내면서 독일의 과거 청산의 모범을 보여주며, 전쟁과 나치즘이 남긴 아픔은 여전히 현재에도 숨쉬고 있음을 보여준다. 


전쟁은 다신 일어나선 안 되는 일이다. 한번 일어난 전쟁은 씨앗처럼 뿌려져 일시적인 상흔이 아닌, 켜켜이 남겨진 화석처럼 후대에도 이어진다. 



전쟁의 시작은 맹목적인 배타주의와 무자비한 선동과 폭력이었음을 항상 기억해야겠다고 다짐하고, 인간답게 살 수 있는 현재에 감사하게 됐다. 



이 책을 읽으며 과거 청산이 되지도 않고 그 중요성을 인지하지 못하는 사회, 교육에 반영되지 못하는 풍토에 개탄한다. 



언젠가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그리고 왜 우리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었는지 역사의 진실을 알려는 노력이 수반되어야 우리의 정체성에 더욱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대한민국에게 이 책은 더욱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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